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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에 관한 메모>

 

· 사진(寫眞)을 모은다.

· 그 사진들은 현재의 시간대에서 멀어진 직·간접적인 경험과 관련된 장면들이다.

· 우리는 과거의 일이 기억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진을 통해 그 시점에 누구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의심치 않는다.

· 이러한 사진의 증명성은 간혹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 현재에는 사라진 장소나 공간을 사진을 통해서 확인할 때, 그것은 단순히 광학적인 기록을 넘어서 무언가 애틋한 것이 된다.

· 그것은 눈을 통해 확인되지만, 손으로 더듬을 수는 없는 마치 ‘유령’ 과도 같은 감각이다.

· 나는 사진기가 피사체뿐 아니라 시간까지 박제해 버리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 나는 그림을 그리지만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은 그림보다는 사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 사진을 재료로 또 다른 사진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 붓질을 통해 물리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이미지는 흐려지고 어느 한 부분이 잘려지기도 하면서 편집된다.

· 나는 오래된 사진을 보면서 회화적 감수성을 느낀다.

· 채도가 높고 명도가 밝고 명료한 윤곽보다는, 빛이 바래서 구성 색채 중 일부가 탈색되어 버린 지점에서 어떤 자극을 받는다.

· 방금 촬영한 사진이라 할지라도 채도와 색채, 명도 등을 조절하면 오래전에 찍혀진 사진과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

· 나는 회화적 기법을 동원해서 위의 항목들을 세밀하게 조정한다.

· 이는 불명료하게 그려지기도 하고, 외곽선을 명확하게 처리하지 않음으로써 가능해진다.

·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사진 속 대상보다는 한 장의 사진에 보이는 축적된 시간의 깊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그린 지 오래되어 보이는 그림을 만들고 싶었다.

· 내가 그리고 있는 것은 사진 속 형상(形象)보다는 사진 그 자체이다.

· 종이는 이러한 시간을 물리적인 방식으로 축적시키는 적절한 바탕(ground)이라고 생각한다.

· 캔버스는 물감의 층이 표면 위로 쌓여지지만, 한지는 물감을 흡수한다. 물감 입자들이 종이 섬유질 조직 사이로 흡수된다.

· 반복적으로 물감을 쌓아 올리면 나중에는 종이의 성질(性質) 또한 변한다.

· 이미지를 구성하는 색채들이 섬유질 사이로 흡수되면서 결국에는 종이가 사진이라는 얇은 사물(事物)로 성질이 변한다고 생각했다.

· 완성된 그림들은 본래의 시간에서 떨어져 나와 각기 다른 시간을 점유하고 있다.

· 그림들은 서로 다른 시간을 유영한 채 전시 공간 이곳저곳에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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