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ON SEJIN
송하영 ONEROOM 공동 디렉터
권세진은 개인전 <1248>에서 <물의 표면>과 <바다의 단면>을 선보였다. 두 작품 모두 바다 물결에 빛이 부서지는 풍경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을 원본으로 삼고 있다. 이 사진 이미지는 먹의 특성과 작업의 효율을 고려해 작가가 임의로 설정한 가로, 세로 10cm 크기의 분절된 종이에 먹으로 그려졌다. 전시는 1200개의 조각으로 구성된 전체 크기 300x400의 <물의 표면>과 25개의 조각으로 만들어진 50x50cm크기의 <바다의 단면> 48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의표면’은 바람에 시시각각 파고를 달리하며 일렁이고, 이 움직임에 따라 빛이 닿아 반짝이는 부분과 어둡게 그림자가 지는 부분이 무수히 교차한다. 작가는 이러한 물의 움직임을 사진으로 담고 디지털 이미지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작업 과정에 맞게 가공한다. 가공의 중심에 있는 것은 조각그림이다. 조각그림은 먹의 농담(濃淡)으로 채워져 있다. 먹의 짙은 부분(濃)과 옅은 부분(淡)의 대비로 풍경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서 풍경은 고정되어 있기보단 ‘상태’에 가깝다. 짙은 부분을 물결과 그림자, 옅은 부분을 반사되는 빛이라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려우며, 매 순간 물결에 떨어지는 빛이 달라지는 것처럼 각 요소는 짙은 부분과 옅은 부분의 관계로 물결과 그림자, 빛이 되어 나타난다.
작가는 꾸준한 수행과 균질함의 차원에서 조각그림을 작업의 제작 방식으로 활용한다. 그렇다고 하여 이 균질함이 단순히 1부터 1200개의 조각그림 모두 일정한 먹의 톤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의 표면>을 글 읽듯 훑어가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 푸른빛이 돌기 시작하여 주변의 조각그림들과는 다른 톤의 먹의 띠를 볼 수 있다. 추측건대 작가는 고정된 크기 안에서 여러 종류의 먹을 운용(運用)함으로써 농담(濃淡)을 조절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 균질함은 먹을 사용한 기간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드러나는 먹의 미세한 농도 차이와 같이 일정한 단위로 묶여 분절된 시간의 총합으로 보인다. 이는 작가가 작업의 언어로 삼고 있는 조각 그림이 형식적 차원의 균질함을 유지하면서 재료의 물성 차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방식임을 말해준다.
<물의 표면>이 이미지 전체를 한눈에 포착할 수 있도록 전시되었다면, <바다의 단면>은 50x50cm 사이즈의 캔버스가 전시공간에 일렬로 배치되어 먹의 띠를 만든다. 관객은 전시장 벽을 따라 걸으며 물의 표면을 병렬적으로 관람하게 된다. 1점 투시의 언근 시점을 격자로 조각내어 눈높이에 맞춰 재배치함으로써 원본 이미지의 단일한 시점이 분산되고 관객은 움직이는 자신의 신체와 시점을 각 그림에 동기화하며 읽어나간다. 산수화를 구성하는 삼원법(三遠法)의 논리가 전시 관람의 동선으로 확정되어 구현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로써 48개의 시점은 바다의 단면에 더 가깝게 닿는다.
권세진의 작업은 스스로 규정한 크기의 조각그림을 화폭에 붙여나가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구성한다. 조각그림의 크기는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제어하는 동시에 최적의 상태에서 먹을 운용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종이에서 농담(濃淡)의 대비로 형상이 생성되는 것처럼 조각그림은 스스로를 소진시키지 않은 상태로 다른 조각그림과 결합하고, 때로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이처럼 그림이 파생되고 확장되는 양상의 중심에 조각그림이 있다. 조각그림은 물과 바다, 표면과 단면, 더 나아가 사진과 수묵화 사이의 오고 감을 가능케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것은 ‘지필묵’이나 각자의 관념에 사로잡힌 ‘한국화’ 혹은 ‘동양화 ’혹은 ‘수묵화’가 동시대에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작가의 응답으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