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ON SEJIN
귀로(歸路)
귀로는 되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돌아간다는 뜻이며 그것은 가야 할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착안하여 지은 제목이다. 내가 그린 장면들은 거주지에서 작업실로 이동하는 동선에서 만들어진다. 나는 내가 처한 환경에서 그림으로 그려질 만한 대상들을 늘 찾는다. 저런 것이 그림의 대상으로 다뤄질 수 있을까 그려지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이런 생각에서부터 출발하고 그려질 만 하다 라는 느낌을 받을 때 사진을 찍어 그려보는 식이다. 2016년 대구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서 동료들과 작업실을 마련했다. 오랫동안 거주했던 도시를 떠나 서울로 오면서 마치 이방인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 이번 개인전에는 밤이라는 시간적 특성을 두고 귀가길에 만나는 장면들을 작업했다. 대중교통이 끊기기 전에 집에 도착하려면 23시에 는 작업실에서 서둘러 나와야 한다. 이처럼 매일 같은 동선으로 만나는 장면들을 사진을 찍고 그림으로 옮겼다. 창작자들이 동감하듯이, 일을 마치고 작업실을 나서는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날 작업했던 그림의 과정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또 내일은 어떤 것을 시도해 볼지 생각해본다. 그런 복잡한 와중에 만나는 풍경들은 예사롭지 않다. 그것은 풍경이 낯설기보다는 순간, 나의 감정이 그 풍경에 몰입이 되면서 낯설어진 것이다. 동양회화에서는 대상과 화가 사이에 감정의 교류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나의 풍경을 바라보고 사색하면서 대상은 곧 내가 되고 나는 그 대상이 된다. 그때 비로소 대상은 단순한 형상을 뛰어 너머 어떤 의(意)를 품게 되는 것이다. 당시의 녹록하지만은 않은 일상의 감정 때문이었을까 낮보다는 밤의 풍경들이 더욱 예민하게 다가왔다. 풍경이 낯설다기보다 나의 감정이 풍경에 몰입하면서 특별해진 것이다. 그림들을 볼 때마다 그때의 시간이 재생되곤 한다.
“밤이 되면 깜깜해진다. 어둠을 걷는다. 겨울밤이라 그런지 깊고 차가운 어둠이다. 어둠 속에서 형태와 어둠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은 가로등 불빛 때문이다. 흑과 백의 경계에서 슬며시 형상들이 모습을 드러난다. 조각난 종이에 하나씩 그려 나간다. 종이에 먹이 스며들면서 종이는 어둠이 되고 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