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ON SEJIN
<현실의 풍경>
현실의 풍경에 관심을 가진지는 몇 년이 되었다. 그 시작은 2015년에 작업한 귀가도(歸家圖)부터 시작되었다. 하루의 작업을 마치고 작업실에서 집으로 가는 동선에서의 공간 변화에 집중했다. 작업실에서 나와 공원에서 홍등가를 지난 후 집으로 다다르는 동선을 연속적으로 배치해 두루마리 그림처럼 한 화면에 담았다. 내가 그린 장면들은 거주지에서 작업실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만나는 온갖 풍경들로부터 만들어진다. 내가 처한 주변의 환경이나 이동하는 가운데 그림으로 그려질 만한 대상들을 찾는다. 일상의 조건에서 만나는 장면들을 예민하게 반응하고 발견한 지점을 그림으로 연결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2018년에는 밤이라는 시간적 특성을 두고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장면들을 작업했다. 매일 같은 동선으로 만나는 장면들을 사진을 찍고 그림으로 옮겼었다.
“밤이 되면 깜깜해진다. 어둠 속을 걷는다. 겨울밤이라 깊고 차가운 어둠이다. 어둠 속 형태를 구분 짓는 것은 가로등 불빛이다. 흑과 백의 경계에서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흰 종이에 붓으로 먹을 칠해 나간다. 붓이 지나간 자리와 멈춘 자리에서 형상들이 슬며시 얼굴을 드러낸다. 먹이 종이에 스며들면서 종이는 어둠이 되고 밤이 된다.” (작업노트)
최근에 관심 있게 바라보는 대상은 도심 속 하나의 작은 자연으로 도시에 존재하는 하천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존재들에게로 시선이 이어갔다. 도림천(道林川)은 구로구의 서울 지하철 2호선 도림천역 부근에서 안양천으로 합류하는 지방 하천이다. 그곳에는 물이 흐르고 있고 물속에 잠긴 작은 바위와 돌 많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나는 도림천을 걸으면서 물에 잠긴 작은 돌에서 큰 바위를 떠올리기도 하고 작은 물의 흐름에서 폭포를 상상하기도 한다. 내게는 그런 작은 것들이 마치 하나의 산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사 산수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대상들은 여러 차례 도림천을 다니면서 바라보고 발견한 대상들이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볼 수 있는 수면(水面)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다. 이는 수면이 매우 관념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모호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거주지를 중심으로 작은 실개천과 여행 중에 보게 된 해 질 무렵의 바다 표면에 반사되는 빛을 담아내기도 하였다. 물의 표면은 굉장히 얇고 투명한 하나의 막(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면 아래로 부피가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런 실재하는 깊이를 물리적으로는 납작한 평면에 그려내기 위한 회화적 방법들을 실험하고 있다. 한지에 안료가 흡수되고 건조되는 방식을 반복하며 얇은 층들을 만들어 겹치면서 작업한다. 회화의 바탕이 되는 재료들은 몇 가지들이 있지만, 한지는 작업하는 과정에 우연적인 표현이 발생하게 된다. 그 우연한 개입을 조절하기 위해서 아교를 발라 작업할 때도 있고, 생지(生紙)에 그대로 그려 나갈 때도 있다. 이처럼 그리고자 하는 작업에 맞게, 스며드는 정도를 조절해 나가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종이 섬유질 사이로 안료가 스며들기도 하고, 표면 위로 쌓이는 양면적인 면 때문에 그리는 내내 수축-팽창하면서 작업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