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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려진 풍경은 한 권의 앨범에서 시작해서 현재는 폐교가 되어버린 학교로 이어진다. 어느 날 오래된 앨범을 들추었을 때 몰려든 낯선 감정에 당혹스러운 적이 있다. 기억보다 또렷하게 각인된 사진 한 장이 발휘한 존재감에 놀란 것이다. 사진첩에는 현재의 나로 귀결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빼곡히 찍혀져 있었다. 기억 속 장소가 갑자기 낯선 모습을 하고 존재하고 있을 때 한동안 멍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릴 때 다니던 학교는 폐교가 된 후 그곳은 전혀 무관한 장소로 바뀌어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나의 머릿속에서 단편적인 기억들을 재생시키며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처럼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 된 기억을 어느 날 어떤 장면 어떤 사람으로부터 발견해내고 감각에 자극을 유발한다. 과거에는 존재하였으나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라져 버린 것들이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되었을 때, 정서적 자극을 받는 것이다. 시간은 과거에서부터 현재, 미래로 흘러갈 수 있으나 기억은 우연한 어떤 자극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과거로 이동할 수 있다. 작업은 전시공간에 수평적으로 걸리는 방식이 아닌 전시공간의 높거나 낮은, 구석이나 모서리 등에 배치하여 마치 저마다의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는 사물들처럼 보이고자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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