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ON SEJIN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여러 과정이 수반된다. 먼저 종이를 프레임에 고정해야 하는데 나는 그 과정이 번거로웠다. 조금씩 작업의 호흡이 끊기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이유로 벽면에 바로 종이를 붙혀 작업하고, 여러 그림을 완성하고 한꺼번에 배접하곤 했다. 이런 과정에서 같은 붓의 움직임으로 작업을 했을 때, 프레임에 붙혀 종이의 면(面)이 고르게 펴진 상태에서의 붓질과 틀에 붙이지 않은 수축 이완된 상태의 표면에서의 붓의 움직임이 조금 더 다양한 형태의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구에서 서울로 작업실을 옮기고 작업 환경이 변화하게 되었다. 가장 힘든 부분은 작업 공간의 물리적인 크기였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 내에서 작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조각 그림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작업을 멈추고 싶지 않은 마음과 매일 훈련하는 운동선수처럼 그림을 그리는 습관이 만들어지도록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쯤 생각한 것이 작게 조각을 내서 하나씩 그려나가는 것이었다. 좁은 공간에서도 완성되는 작업의 크기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작업 할 수 있었다. 매일 작업한 양을 계산할 수도 있었고 효율적인 방식이라 생각되었다. 조각그림의 크기를 설정하는데 고려한 사항이 있다. 수묵화에서는 빠른 속도의 붓질로 대상을 간결하게 표현한다. 그 과정에서 종이에 먹이 번지면서 우연적인 표현들이 만들어진다. 그 우연성을 드러내는 것이 먹과 종이라는 재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붓질로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종이에 수분이 마른 후에 먹이 올라가면 먹빛은 탁해지고 번짐은 감소하기 때문에 수분이 모두 마르기 전에 그림을 끝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 제약된 시간 내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할 수 있는 물리적인 크기가 10x10cm였다. 크기를 설정하면서 붓질의 개별성을 드러나면서 대상을 그려낼 수 있는 방식으로 작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 그림의 크기가 클수록 중심부와 비교해서 외곽과 하단의 완성도가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화가의 신체가 면적과 반응하기 때문인데, 대상과 형식에 따라서 특정 부분이 소홀 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 문제점을 제어하는 하나의 형식이 필요했다. 전체 화면에서 균일한 완성도를 내기 위해서, 이미지를 분절해서 균일한 완성도로 제작하고 싶었다.
수면 연작은 하나의 이미지를 여러 단위로 분절하여 각각의 시간성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시도의 결과물이다. 한지를 가로 세로 10cm 규격으로 잘라낸다. 책상 위에는 한 조각이 올려진다. 붓을 잡고 한 칸씩 그려나간다. 매 순간 그려야 할 이미지들이 주어진다. 붓을 이렇게도 움직였다, 저렇게도 움직였다 최선을 다해 그린다. 어떤 구간은 세밀하고 어떤 구간은 단순하다. 전체 과정이 끝나야 조각들을 모아서 전체 이미지를 바라본다. 약간의 오차와 반복들이 이미지에 어떤 불규칙성을 만들어 내고 서로 각자의 시간을 점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