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ON SEJIN
이 프로젝트는 우연한 계기에서 출발하였다. 작년 겨울 신도림 부근의 도림천을 촬영하기 위해 나갔다가 공사장을 하나 발견했다. 가림막이 처져 있어 내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가림막의 천막이 시야에 들어왔다. 규모가 꽤 컸었고 하얀 천막이었다. 나는 시선을 빼앗겼고 왜 그런 것인지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내게는 캔버스로 보였던 것이다. 외부의 영향으로 구겨진 주름들 사이로 진 그림자는 환영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부의 모습은 알 수 없으나 그 천막의 표면을 본 순간 회화성을 강하게 느꼈다. 이번 전시는 표면과 재현성에 관한 물음으로 이어졌다. 화면에 주름들을 그려 넣는다. 그것을 회화일까 사물일까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업을 진행할수록 회화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혹은 왜 회화로 인식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지지대와 캔버스 그리고 물감의 자국들 이러한 회화의 기본 요소들을 다시 해체시켜 생각하는 것이 이번 기획의 목표이다. 가림막이라는 대상은 적절하게 다가온다. 그것 또한 지지대가 있으며 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쩌면 거대한 캔버스인 것이다. 이를 회화적으로 해석하여 전시공간에 펼쳐 놓으면 어떠한 풍경이 만들어질 것인가 질문한다.
일상에서 발견한 추상과 구상의 경계의 있는 모호한 대상을 작업의 모티브로 하여 회화적 가능성을 실험해 보고자 한다.
길을 걷다가 가림막이 쳐진 공사장을 발견했다. 철재 지지대 위에 설치된 흰색의 천막이 내게는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처럼 느껴졌다. 표면의 구겨짐으로 인해 주름 속 음영은 그 자체로 시각적 환영을 띠고 있었다. 천막의 질감은 마치 돌의 표면 같아 보이기도 하고 굴곡으로 인해 만들어진 음영은 바위의 형태를 연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2018년부터 특정 장소나 실재의 공간의 장소성을 드러내기보다 추상성이 있는 모호한 대상들을 그려나가고 있다. 점차 이미지에 서사성을 줄여나가는 것에 관심이 많아졌고 내용적인 부분보다 형식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출발점은 수면에 일렁이는 빛을 그린 <밤의 온도>(2018)라는 작업이었다. 작업을 해나가면서 서사성을 점차 배제하게 되었고, 회화의 평면성을 인식한 후 공간감이나 원근이 없는 수면을 먹이라는 재료를 통해 지속적으로 그려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심 가림막의 음영들을 관찰하여 사진으로 기록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 먹지라는 중간의 필터를 이용하여 그림자들을 옮겨 그려낸다. 재현과 비 재현,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있는 요소들을 질문하며 회화적 가능성을 열어두고 탐구해 보고자 한다.
실제 도심에 가림막이 있는 장소를 방문하고 주름들을 관찰하면서 그 속에서 여러 형상의 모티브를 발견하고 기록-재현해나감으로써 이미지는 본래의 맥락에서 멀어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회화적 실험들을 진행해 보고자 한다.
재료적인 면과 기법은 다소 다르지만 대상이 된 가림막은 수면과 일치하는 공통적 요소들이 있다. 첫 번째는 두 대상 모두 고정된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끊임없이 외부의 운동으로 움직이고 변화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수면은 반짝이는 빛의 움직임이나 물결의 움직임으로 수면임을 인지하는 구체성이 만들어진다. 가림막 또한 팽팽히 당겨져 있지 않고 외부의 물리적 자극에 의해 구겨지거나 늘어지면서 주름이 발생하는데 이를 통해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 두 가지 대상들을 우리 눈에 보이도록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요소는 외부의 개입이다. 빛의 움직임과 주름진 천의 굴곡 사이로 발생하는 그림자 같은 것이다. 표면을 덮고 있는 빛을 추적하고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면은 한지에 먹이라는 재료의 성질을 이용하고 먹이라는 재료가 액체이기 때문에 물이라는 대상을 연상하게 되는 요소가 있었다.
반면 신작은 가림막 그 자체를 그리고자 목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굴곡의 의해 만들어진 빛과 그림자의 관계를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림막은 평면이며 캔버스라는 회화의 기본적인 요소 또한 지지대 위에 천을 덧씌운 것이라는 유사성이 있다. 천에다가 다시 천을 그리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회화의 평면성을 인식할 때 이를 이용함으로써 대상과의 유사성을 확보하고 표면 위에 음영을 새기면서 화면에서의 환영의 깊이감을 만들어 낸다. 결과물에서 보이는 표면 위의 그림자 혹은 음영은 추상적이지만 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매우 구체성을 띤다.
주름을 옮겨내기 위해서 캔버스와 인쇄물 사이에 먹지를 끼워 넣어 작업한다. 캔버스 위에 먹지를 올려놓고 인쇄물 위에서 손의 감각 압력으로 음-영을 기록해 나간다. 여기서 먹지는 표면과 그리는 행위 중간에서 이미지가 변형되는 필터의 역할을 한다. 그 변형은 약간의 오차 혹은 흐려짐, 일정한 음영의 톤이다. 먹지는 일반적으로 스케치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흑연의 입자가 얇게 발려져 있다. 매우 얇게 발려져 있는 탓에, 한번 그어진 자리는 다시 지나가면 기록되지 않는다. 때문에 캔버스 표면에 흔적이 만들어질 때 반복적으로 쌓아서 음영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먹지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의 음영 단계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이것은 나의 작업에 있어 음영의 제한을 줄 수 있고 의도적으로 깊은 음영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제한을 둠으로써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둠을 기록하고자 하는 작업 방식에 도움을 준다.
실제 도심에 가림막이 설치 있는 장소를 방문하고 주름들을 관찰하면서 그 속에서 여러 형상을 발견하고 기록-재현해나감으로써 이미지는 본래의 맥락에서 멀어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회화적 실험들을 진행해 보고자 한다.